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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정보

10월 25일 독도의 날, 역사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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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독도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소속된 섬입니다.

위치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 번지 

경위도

동도(동경 131°52′10.4″,북위 37°14′26.8″), 서도(동경 131°51′54.6″,북위 37°1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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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 부속도 25,517㎡)

독섬·돌섬이라고도 하며, 면적은 18만 7,554㎡ 입니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동도(東島)·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입니다. 동도는 동경 131° 52′ 10.4″, 북위 37° 14′ 26.8″에, 서도는 동경 131° 51′ 54.6″, 북위 37° 14′ 30.6″에 위치합니다.

동도·서도간 거리는 151m로 좁은 수도(水道)를 이루며, 동도는 해발고도 98.6m, 면적 73,297㎡, 둘레 2.8㎞이고, 서도는 해발고도 168.5m, 면적 88,740㎡, 둘레 2.6㎞이며, 부속도서 89개의 면적은 25,517㎡입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10월 25일 독도의 날인 이유와 의미

독도의 날’은 일본의 영유권 야욕으로부터 독도 수호 의지를 표명하고 전 세계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리기 위한 날입니다. ‘독도의 날’이 10월 25일이 된 이유는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대한 제국 칙령 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데서 출발했습니다.

독도 수호 운동을 하는 ‘독도수호대’가 지난 2000년 ‘독도의 날’ 지정을 제안하며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004년과 2008년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과 국회청원활동을 펼쳤습니다. 2010년 ‘독도의 날’은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릉도 부속 섬으로 관보에 공포했다.(사진=‘내 손안의 독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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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역사

독도의 역사는 512년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부속 섬인 독도는 우리 땅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뜻의 ‘삼봉도’로 불리게 되었고, 정조실록을 보면 이 섬 주변에 가제(물갯과 동물 강치를 이름)가 살고 있기에 1794년부터는 ‘가지도’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칙령 41호’로 독도를 돌섬의 한자 표기인 ‘석도’로 부르다, 1906년 ‘독도’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1914년 독도는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사부, 우산국 정복하여 신라 영토에 편입됨(삼국사기 기록)
· 1693년: 동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 근해에서 왜인을 발견해 퇴거시키고, 일본 에도막부에게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서계를 받음(숙종실록 기록)
· 1900년: 고종, 칙령 제41호 제정 반포로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하며 독도를 울도군 관할로 편입함
· 1905년: 일본,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칭하고 시마네현 고시 40호에 의해 일본 영토로 편입(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으로 국권 상실)
· 1907년: 울릉도 및 독도의 관할권이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경상도로 이속
· 1946년: GHO(연합국 최고사령부)에서 SCAPIN(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에 의거하여 독도를 일본 통치권에서 제외
· 1953년: 독도의용수비대 조직(대장 홍순칠․대원 32명)
· 1956년: 국립 경찰, 독도 경비 인계
· 1981년: 독도 주민증 최초 전입(최종덕, 울릉읍 도동리 산67)
· 1982년: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 - 천연기념물 제336호(독도해조류 번식지)
· 1998년: 신한일 어업협정 체결
· 1999년: 국가지정문화재관리단체 지정 및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관리지침 고시 문화재 명칭변경(독도해조류 번식지  →  독도천연 보호구역)
· 2000년: 행정구역 명칭 및 지번 변경(행정구역: 도동리 → 독도리(서반-1반, 동도-2반) / 지번: 도동리 산42∼76번지 → 독도리 산1∼37번지
· 2003년: 정보통신부, 독도에 우편번호 ‘799-805’ 부여
· 2005년: 탐방로 등 11필지 공개제한지역(동도) 지정 해제(입도허가제 → 신고제로 전환), 지번 번경(산1∼37번지 → 1∼96번지)
· 2008년: 도로명주소 변경에 따라 '독도이사부길'과 '독도안용복길'이라는 새 주소 부여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우리 영토인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48해리인데, 일본 은기도에서는 이 거리의 약 2배인 82해리입니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나라와 훨씬 가깝습니다. 

 

하지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과 동시에 정부는 독도에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를 부여하는 행정조치를 취하였으며, 1952년 1월 18일에는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통칭 평화선)'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열흘 뒤인 1952년 1월 28일 평화선 안에 포함된 독도(일본 호칭 다케시마(竹島))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보냈는데 이것이 독도 영유권 논쟁이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독도를 둘러싸고 외교문서를 통한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습니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1953년 6~7월 일본 순시선에 관리 및 청년들을 태우고 와 독도에 상륙시키자,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일본인들을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우익단체 등을 중심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해 오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총리와 외무장관 등 당국자가 나서 공식·비공식 발언을 통해 외교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1996년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하면서 영유권 분쟁을 다시 발발시켰고, 1998년에는 양국 간에 한일 신어업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신어업협정에서는 울릉도 기점 35해리와 오키도 기점 35해리까지를 한·일 양국의 EEZ로 하고 그 중간에 있는 '독도'를 포함한 수역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했습니다. 그 결과 독도는 양국이 공동 관리하는 공해성격의 수역인 '중간수역'에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시마네현 일부 주민들이 독도로 호적을 옮기자, 한국 시민단체들도 '독도로 호적 옮기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한편 독도에는 1997년 11월 7일 총 177억 원여의 사업비를 들여 80m의 주부두와 20m의 간이부두, 137m의 진입로를 갖춘 독도접안시설이 준공되었으며, 준공기념비에는 '대한민국 동쪽 땅 끝, 휘몰아치는 파도를 거친 숨결로 잠재우고 우리는 한국인의 얼을 독도에 심었노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독도에는 현재 독도경비대 40여 명이 주둔해 있고, 우리의 등대와 선착장이 있는 등 우리나라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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